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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제2의 세계’, 동유럽 암호화폐 시장은 세계 블록체인의 허브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인가?

중동부유럽 일반 이하얀 한국외국어대학교 EU연구소 책임연구원 2020/10/21

인류의 화폐 역사와 세상에 없던 화폐의 등장
화폐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궤를 함께한다. 인류의 탄생과 함께 시작된 물물교환은 내가 원하는 것과 타인이 가진 것의 가치를 합리적으로 교환하는 방식이다. 시간이 지나며 물물교환의 한계가 드러났고 조개껍데기, 콩, 쌀 등을 사용하는 물품 화폐로 발전하게 된다. 물품 화폐는 주화와 금속화폐로 진화하였고 이후 쉽게 저장할 수 있으며 상호 교환이 쉬운 지폐, 그리고 신용을 기반으로 하는 신용화폐가 등장한다. 1990년대부터 실물 명목화폐를 대체하거나 보완하기 위한 디지털화폐를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번번이 실패하였다. 그러던 2008년 11월, 암호화폐(Cryptocurrency) 개발에 시발점을 알린 A4 9페이지 분량의 논문인 「비트코인 : P2P 전자화폐 시스템(Bitcoin: A Peer -to-Peer Electronic Cash System)」이 세상에 공개된다. 이 논문은 일본에 거주하는 1975년 4월 5일생, 익명의 프로그래머 사토시 나카모토(Satoshi Nakamoto)가 작성하였다고 알려져 있으나 작성자가 개인인지 프로그래머 그룹인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금융기관의 개입 없이 ‘개인 대 개인간 전자화폐시스템’을 통한 새로운 거래 방식을 소개하였고 세계 최초의 암호화폐인 비트코인(Bitcoin)을 탄생시켰다는 것이다. 이 논문에서는 블록체인과 비트코인의 기본 구조를 설명하고 있다. 그가 구현한 최초의 블록체인 관리 프로그램인 ‘비트코인 코어(Bitcoin Core)’는 암호화폐인 비트코인을 만들고 이것을 블록체인 형태로 기록할 수 있게 설계되었다. 블록체인 기록을 검증한 대가로 주어지는 보상이 바로 새로 생성된 비트코인이다. 이듬해인 2009년에 비트코인 코어 프로그램이 공개되며 비트코인이 처음 발행되었다. 

암호화폐의 탄생배경과 현재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속에서 인류가 사용해 오던 화폐 체계와 기존 은행의 구조가 붕괴 위기에 직면했다. 각 국가의 정부와 중앙은행은 화폐 발행을 늘리는 양적 완화를 추구했으나 이는 곧 돈의 가치 하락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기존의 변동 환율제도의 문제점을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과 함께 기존 금융 제도의 틀을 깨는 방식의 암호화폐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전통적인 금융 제도에서 은행이나 금융기관이 모든 거래내용을 보관하고 관리자가 이를 관리하였다면 암호화폐의 분권형 네트워크에서는 모든 채굴자가 이 일을 대신한다. 네트워크 내 일어난 모든 거래 내역을 기록해 놓고 누구나 공공원장인 블록체인을 통해 화폐의 흐름과 거래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원장을 위조하거나 수정할 수 없게 암호화하며 화폐의 가치를 보존하는 동시에 채굴자는 거래수수료와 보상금을 받게 된다. 암호화폐 네트워크 내 채굴자들이 암호 퍼즐을 풀어 이를 암호화 시키고 네트워크 전반에 걸쳐 확산시키기 때문에 그 누구 한 명이 이를 관리 할 수 없어 가장 안전한 보안시스템이 된다. 2009년부터 비트코인은 본격적으로 화폐로서 사용되기 시작한다. 처음 등장 당시에는 만질 수도 없고 보이지도 않는낯선 개념의 화폐에 기능을 의심받고 1비트코인에 한화 50원 수준이었지만, 수많은 변동성에도 불구하고 가치는 상승하고 이용자가 증가하는 추세에 있으며 점점 더 많은 국가에서 실제 화폐와 같은 대우를 받고 있다. 암호화폐의 실시간 시장 데이터를 분석하는 코인마켓캡(coinmarketcop.com)에 따르면 2020년 8월 31일 기준, 총 3,545개의 암호화폐가 존재하며 하루(24시간) 거래량은 975억 달러 이상에 이른다고 한다. 

유럽연합의 암호화폐와 규제
2018년 페브릭 벤처스(Fabric Ventures)가 발표한 '토큰 시장 현황(The State of the Token Market)'에 의해 유럽의 암호화폐 판매량과 거래량이 미국과 아시아에 비해 월등하게 높은 수준임이 밝혀졌다. 2018년 1월부터 9월까지 미국의 ICO(암호화폐공개) 판매량은 23억 달러, 아시아 전체 지역은 26억 달러지만, 유럽은 동기간 41억 달러로 두 배가량 많았다. 국가별로는 스위스가 5억 5,600만 달러, 영국 4억 9,000만 달러, 리투아니아가 2억 7,100만 달러 순으로 많았다. 아시아 국가들은 암호화폐를 유가 증권으로 설정하여 규제기관의 감독으로 거래가 활발하지 않지만, 유럽의 경우 동유럽 국가를 비롯한 몰타, 우크라이나,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등 국가가 암호화폐에 친화적인 정책을 내세우며 투자자와 신뢰 관계를 맺은 것이 유럽 암호화폐 판매량 증가에 큰 역할을 했다고 분석된다.

또 스웨덴과 독일, 프랑스를 비롯한 여러 유럽 국가에서는 암호화폐에 대해 비교적 개방적인 입장을 가진다. 2020년 3월, 독일 정부는 비트코인을 포함한 암호화폐 자산에 새로운 금융상품으로서 가치를 부여했다. 법정통화는 아니지만, 디지털 방식의 가치 저장 및 교환수단으로 기업들이 거래할 수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스웨덴은 2018년부터 전 세계 최초로 국가 주도 암호화폐 발행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으며 2020년 2월,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이크로나(e-krona)’의 테스트 단계에 착수했다. 세계에서 현금 의존도가 가장 낮은 스웨덴에서 누구나 쉽게 사용 가능한 효과적인 디지털화폐를 구현할 수 있을지 전 세계의 귀추가 주목된다. 네덜란드의 스히폴 국제공항에는 2018년 전 세계 최초로 암호화폐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설치되었다. 여행자들이 사용하고 남은 유로화를 이더리움이나 비트코인으로 바꿀 수 있다. 암호화폐에 관한 관심, 특히 젊은이들의 높아지는 관심사를 고려해 설치하였고 많은 거래 건수가 기록되었다. 이처럼 암호화폐가 더이상 ‘가상화폐’가 아닌 유럽연합 시민들의 일상 속에 자리를 잡아 감에 따라, 유럽연합은 2018년 제5차 자금세탁방지법(5AMLD, Fifth European Union Anti-Money Laundering Directive)을 개정했고 2020년 1월 10일부터 전격 시행에 돌입했다. 이에 따라 유럽연합의 각 회원국의 규제 당국은 암호화폐 거래소 등을 대상으로 자금세탁방지(AML) 규정과 고객신원확인(KYC) 규정을 강화하고 있다. 국가에서 암호화폐 거래소를 관리 감독하고 사용자의 의심쩍은 거래가 발견되면 이를 보고해야 한다. 위 법안의 목적은 암호화폐 거래를 누가 얼마나 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데 있다.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와 동일한 국제기준을 적용하며 규제당국은 탈세, 마약, 블랙마켓, 테러자금조달 등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이 밖에 유럽연합은 실시간으로 법률에서 세밀하게 다루어지지 않는 부분들을 수정하고 새로운 암호화폐 시장에 맞춘 제도와 유럽 전체에서 인정되는 여권 제도를 준비 중이다. 2020년 하반기, 새 디지털 금융 전략의 하나로 암호화폐와 관련한 규제를 발표할 예정이다. 

‘제2의 세계’로 떠오르는 동유럽 국가에서의 암호화폐
암호화폐와 거래 기업에 대한 유럽연합의 자금세탁방지(AMLD5)와 같은 규제들이 늘어나며 유럽 내 암호화폐 기업들이 규제가 느슨한 곳으로 이동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그 종착지는 ‘제2의 세계’로 불리는 동유럽 국가들이다. 전통적으로 수학과 암호학 인력이 풍부하고 노동력이 저렴한 동유럽 국가들에서는 유연한 제도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찾는 자들을 흡수하였다. 비용대비 가장 효과적인 솔루션을 제공하며 타 국가와 비교하여 평균 3~5배의 저렴한 가격으로 약 40일 만에 암호화폐 회사를 설립하고 라이센스를 등록을 마칠 수 있으며 취득세가 없어 세금을 절약할 수 있음을 앞다투어 홍보하였다. 그 결과 싱가포르, 영국 등에 본사를 둔 암호화폐 파생상품 거래소들이 암호화폐에 친화적이며 국가 자체에서 암호화폐 거래를 합법화한 벨로루시, 몰타, 키프로스 등으로 자리를 옮겼다. 암호 화폐시장은 자유로운 네트워크 속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는데 유럽연합의 규제는 투자자들에게 비용과 접근 방식에 높은 장벽을 만들기 때문이다. 

독일의 온라인 통계 포털인 스태티스타(Statista)의 연구에 따르면, 폴란드, 라트비아, 조지아,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등의 국가는 모두 2018년 유럽 대체 금융시장 거래 총액 기준으로 상위 15개국에 이름을 올렸다. 같은 해 영국에서는 온라인 대체 금융 거래에서 1인당 거래량이 가장 많았지만, 그 뒤로는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순으로 많은 거래량을 기록했다. 

물론 모든 동유럽 국가가 암호화폐에 긍정적인 것은 아니며 유럽연합 회원국 국가들은 유럽연합 규제에 따른 영향을 받고 있다. 

체코는 전 세계적으로 2017년에 암호화폐 붐이 일어나기 전부터 비트코인을 받아들였다. 2015년 4월 체코 중앙 은행은 ‘체코 국립 은행 관점에서의 온라인 결제와 가상화폐의 안정성(Bezpečnost internetových plateb a virtuální „měny“ z pohledu ČNB)’이라는 문서를 발행하면서 암호화폐에 대한 태도를 천명했다. 이 문서에 따르면 암호화폐와 관련된 활동들은 국법에 따라 제한되지 않으며, 다만 유럽연합의 법에 따르게 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후 2017년 체코는 유럽연합의 자금 세탁 방지 요건을 준수하기로 했으며, 범죄 수익의 정당화 및 테러 자금 조달에 관한 선별 조치법 개정안을 도입했다. 새로운 법안에 따르면 은행을 포함한 모든 거래소는 1,000유로 이상의 액수에 상응하는 암호화폐의 환전에 대해서 고객의 신분을 확인해야 한다.

헝가리에서는 암호화폐가 합법적인 결제 수단이 아니다. 암호화폐에 대해 정해진 법적 정의도 없으며 이를 마련하기 위한 움직임도 없다.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를 이용한 투자활동으로 벌어들인 모든 소득은 현재 '기타 소득'으로 분류되어 과세된다. 

폴란드 현지 언론 포트폴리오(Portfolio)에 따르면, 정부는 폴란드의 중앙은행, 재무부, 세무당국으로 구성된 특별 그룹을 만들어서 법적인 틀을 만들고자 하고 있다. 모든 암호화폐 거래는 기타 소득으로 분류하여 신고되고, 폴란드 양도 소득세법에 따라 세금이 매겨지는데, 여기에는 양도소득세 15%와 EHO로 불리는 건강증진기금 19.5%가 포함되어 있다. 암호화폐 투자에 대한 폴란드 금융당국의 태도는 상당히 긍정적이다. 폴란드 중앙 통계청은 가상화폐의 거래와 채굴을 공식적인 경제 활동으로 인정했다. 재경부는 2016년 성명을 통해 가상화폐가 폴란드의 법률에 따라 별도의 규제를 받지 않지만, 완전히 합법적이며, 소득세 부과 대상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폴란드 정부는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스타트업(Start-up)을 지원하고 있다. 일례로 2019년 폴란드의 재정 및 예산 감독 위원회(KNF)에서는 블록체인 스타트업인 ‘Coinquista’와 ‘Bitclude’에 국가 공인 면허를 부여했다.

유럽연합의 회원국임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중앙은행이 전통적인 금융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태의 패러다임을 도입하려는 국가도 있다. 

불가리아 정부는 암호화폐를 금융 자산으로 여긴다. 범죄자들로부터 몰수한 비트코인은 불가리아의 전체 GDP보다도 큰 규모인 21만 3,519개에 달한다. 현재 불가리아는 비 트코인의 정당성을 인정하지도, 불법으로 선언하지도 않고 있다. 현지에서 암호화폐를 사용할 수 있는 주요 조건은 거래나 판매액의 10%에 해당하는 금액을 세금으로 납부하는 것뿐이다. 

조지아는 세계 2위의 암호화폐 채광국으로 떠올랐고, 몰도바는 암호화폐 채굴을 합법화하였다. 벨라루스는 ‘유럽의 홍콩’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암호화폐의 중심지로 변모를 꿈꾸고 있다. 

2020년 5월, 발칸 유럽에 있는 알바니아의 국회는 암호화폐 관련 법안인 ‘분산형 원장 기술에 기초한 금융 시장법(Law on Financial Markets Based on the Technology of Distributed Ledgers)’을 통과시켰다. 이에 알바니아는 몰타와 프랑스의 뒤를 이어 암호화폐와 관련한 법적 체제를 보유한 국가가 됐다. 

이와 같은 발전으로 동유럽을 기반으로 하는 유럽 최대 규모의 암호화폐 거래소가 탄생하였다. ‘Exmo’는 세계 25위 수준의 거래 규모를 자랑한다. 2013년 첫 개장 이래로 5년 만에 120만 명의 회원을 확보하였다. 이 거래소에서는 동유럽의 대부분 언어와 러시아어, 터키어 등 다양한 언어로 제공되며 유로와 루블은 물론, 불가리아의 레바, 폴란드의 즐로티 등과 같은 현지 법정통화로 거래할 수 있다.

시사점
동유럽 국가들은 일찍부터 정치체제와 국가 금융 제도의 급격한 변화를 몸소 체험하였다. 사회주의에서 민주주의로, 공산주의 체제에서 자본주의 체제로의 변화 과정은 새로운 형태의 화폐 도입에 대한 두려움을 약화시켰다. 중개자가 없는 신속한 금융거래에 대한 높은 관심과 국가적 제도 확립을 통해 경제적으로 특권을 얻고 있다. 제도권 내에서 인정받지 못하던 새로운 형태의 화폐가 동유럽 국가 내에서 블록체인의 허브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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