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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에 대한 불가리아의 대응

불가리아 이하얀 한국외국어대학교 EU연구소 연구교수 2023/05/08

불가리아와 러시아
역사적으로 불가리아는 ‘아버지와 아들 국가’라고 불릴 정도로 소련과 가장 가까운 국가였다. 소련은 불가리아에 저렴한 가격으로 석유를 수출함으로써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고르바쵸프(Mikhail Gorbachov) 등장 이전까지 불가리아 외교 정책의 기본은 ‘소련과의 우호 협력’이었으며 당시 불가리아 당서기장 또도르 지프코프(Todor Zhivlov)는 “소련과 불가리아의 관계는 생물이 토양과 공기를 필요로 하는 것과 같다”며 소련에 대한 충직한 우정을 수차례 언급하기도 하였다.     
 
더 거슬러 올라가 1878년 5세기간 오스만 투르크로부터 지배를 받던 불가리아는 1878년 러시아-투르크 전쟁을 통해 독립할 수 있었다.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 중앙에 러시아 전쟁용사를 기리는 ‘알렉산더르넵스키(Alexandr Nevski)’ 성당이 건립되었을 만큼 러시아는 불가리아의 독립을 쟁취하는데도 많은 이바지를 하였다. 또한 2차 세계대전 중 불가리아 내 파시즘(Fascism)을 타파하는 데에도 큰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소련이 해체된 후 불가리아는 러시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유럽으로의 회귀(Return to Europe)’를 선택했고, 유럽연합(EU) 가입을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불가리아의 정치 및 경제 체제는 소련을 본떠 만든 것이었으므로 완전한 개혁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서는 EU의 적극적인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EU가입 이후에도 원활한 보조금 수령, 솅겐(Shengen) 조약과 유로존(Eurozone) 가입 등을 위해 그 어떤 회원국보다도 EU의 기조에 적극적으로 발맞추어 행동하고 있다. EU 가입 직후부터 줄곧 지적되어 온 부정부패 문제를 개선하기 위하여 역대 불가리아 행정부는 사법 개혁과 조직범죄 근절에 힘썼다. EU도 부패 및 조직범죄 척결과 사법 개혁 등을 위한 협력 검증 메커니즘(CVM, Cooperation and Verification Mechanism)을 통해 불가리아의 변화에 진전이 있는지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EU 회원국이 되었다고 해서 러시아를 완전히 등질 수는 없는 상황이다. 불가리아의 천연가스 국내 수요의 90%가 러시아산으로 충당되기 때문이다. 러시아로부터 수입하는 가스의 양은 연간 30억 입방미터(3 bcm)에 달하며, 이 중 90%는 가스프롬에서, 5억 입방미터(0.5 bcm)는 아제르바이잔을 통해 들여온다. 또한 친러 성향의 정치인들이 여전히 불가리아 의회에서 활동하고 있어, 러시아와의 강한 문화적·역사적 결속을 하루아침에 끊어 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와 같은 이유로 1991년 이후 불가리아 내에서는 친러 세력과 친서방 세력이 끊임없이 갈등을 빚어 왔고, EU와 러시아 사이에서 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줄다리기가 계속되었다. 

불가리아에 대한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
불가리아는 EU 회원국으로서 러시아산 가스를 대체 할 에너지원을 도입하길 희망하였지만 이미 지난 수십 년간 러시아산 가스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혹독한 겨울을 나기 위해 러시아산 가스를 제공받을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2004년부터 현재까지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 사건이 수 차례 벌어졌다. 2004년에는 벨라루스 최대 천연가스 수송 업체인 벨트란스가즈(Beltransgaz) 소유권을 둘러싸고 가스 대금을 미지급했다는 이유로 30시간 동안 가스 공급이 전면 중단되었다. 2016년에는 불가리아가 친EU적 행보를 보인 데에 대한 보복성 성격으로 가스 가격을 인상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사태가 있을 때마다 불가리아 내 에너지 안보 위기의식이 촉발되었다. 또한 EU 가입 이후 국내 물가 상승이 지속되면서 에너지 정책에 따른 전기 가격 상승에 대한 국민들의 극심한 거부 반응이 있었다. 여타 국가들에 비해 러시아와 더욱 밀접한 관계에 있던 불가리아가 EU 회원국으로서 적극적인 대응이 불가했던 것도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2000년대부터 현재까지 불가리아는 각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높은 비율로 러시아산 가스에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되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가스 분쟁으로 인해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가 높은 불가리아에 대한 가스 공급 중단사태가 벌어졌다.

<표 1> 불가리아에 대한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


자료: Korteweg(2018), pp. 14-15를 바탕으로 저자 일부 추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불가리아의 에너지 안보 위기 발발
러시아는 2022년 4월 마지막 주부터 가장 강력하게 우크라이나를 지원한 폴란드와 불가리아에 대해 보복 조치로 천연가스 공급을 차단했다. 러시아는 불가리아가 가스 대금을 루블화로 결제하지 않은 점을 가스 공급 중단의 이유로 들었다. 키릴 페트코프(Kiril Petkov) 불가리아 전 정부는 가스 공급선을 다변화하고 있으므로 타격이 제한적일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이는 사실과 달랐다. 불가리아의 천연가스 비축량은 한 달 분량뿐이고 아제르바이잔에서 생산되는 가스를 그리스로부터 직접 공급받을 수 있는 연결관이 7월 초 완공된다고 하더라도 연간 10억 입방미터(1 bcm)의 가스를 확보할 수 있을 뿐이었다. 페트코프 총리와 루만 라데프(Ruman Radev) 대통령은 러시아 가즈프롬(Gazprom)이 요구한 가스 대금의 루블화 결제 거부와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제공을 둘러싸고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다. 라데프 대통령은 페트코프 총리의 친우크라이나 행보를 강력하게 반대했다. 하지만 총리는 대통령이 포퓰리즘적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비판하며 전쟁만큼 위험한 것이 정치적 위기라고 언급하고 이럴 때일수록 러시아의 에너지 패권에 휘둘리지 않고 불가리아가 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불가리아가 앞장서서 EU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들과 한 목소리를 내며 단일행동을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처럼 대통령과 총리 간 의견 불일치로 인해 정세 불안이 이어지자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 역시 총리를 지지하는 쪽과 러시아의 요구사항을 들어줘야 한다는 쪽으로 양분됐다. 결국 대러 강경 기조를 유지한 페트코프 총리는 2022년 6월 27일 자신의 연립정부 총사퇴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중도우파 성향의 야당인 유럽발전시민당(GERB)이 정부의 공공 재정ㆍ경제 정책 실패와 물가 폭등에 대해 연정 불신임안을 제출하자 불가리아 의회가 2022년 6월 22일 페트코프 정부에 대한 불신임안을 의결했기 때문이다. 라데프 대통령은 임시정부를 구성하고 갈랍 도네프(Galab Donev) 총리를 선임하였다. 불가리아는 2년 동안 5번의 총선을 치루는데 총선 사이의 임시 정부 임기가 늘어나며 대통령의 영향력이 자연스럽게 커졌다. 야당은 내각을 이용하여 대통령 공화국을 추구한다고 비판하기도 하였다. 

불가리아의 에너지믹스
2020년 기준 불가리아 에너지 믹스(Energy Mix)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자원은 석탄, 석유, 원자력이다. 석탄은 1990년과 비교했을 때 42%가량 줄어든 수준이지만 여전히 불가리아의 에너지원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석유 또한 체제전환 직후와 현재를 비교하였을 때 절반 이상 줄어든 수준이지만 여전히 석유를 상당량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고 볼 수 있다. 1990년부터 현재까지 꾸준한 에너지 믹스 규모를 차지하는 것은 원자력이다. 불가리아의 원전 시설은 수도 소피아(Sofia)에서 200km 떨어진 코즐로두이(Kozloduy) 지역에 위치한 ‘코즐로두이 원자력 발전소’가 유일하다. 총 6호기가 있으며 1, 2호기는 1970년에, 3, 4호기는 1980년에, 5, 6호기는 1988년에 건설되었다. 불가리아에서 사용되는 연간 전력의 30% 이상을 생산하고 저렴한 가격의 전기를 국민에게 제공하기 때문에 불가리아 경제 안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2005년까지 불가리아 총 전력 생산의 42.2%를 차지하기도 하였으나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 국제기관들의 계속된 위험성 지적을 받고 EU의 안전성검사 기준에 부합하지 않아 2003~2006년 1, 2, 3, 4호기 가동이 중단되어 현재는 5, 6호기에서만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 2019년 불가리아 총 발전량에서 원전 비중은 37.5%로 16.6 테라와트시(TWh)를 공급하고 있다.

2007년 EU 가입 이후 불가리아의 에너지 정책은 EU의 기조에 맞춰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불가리아 에너지 정책의 주요 목표 역시 탈탄소화, 에너지 효율 높이기, 천연가스 공급원 다양화, 경쟁력 있는 에너지 시장 개발 및 에너지 수요 확보 등이다. 2011년 6월 발행한 「2020년까지의 불가리아 에너지 전략(ЕНЕРГИЙНА СТРАТЕГИЯ НА РЕПУБЛИКА БЪЛГАРИЯ ДО 2020 Г.)」에 따르면 불가리아는 원자력 발전을 이산화탄소 배출이 적은 에너지원으로 활용하여 탈탄소 정책에 맞추겠다는 계획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러시아산 천연가스 공급이 끊기자 불가리아는 중단된 3, 4호기 원전을 재가동하여 전기를 생산하려고 하였으나 심각한 위험을 우려한 EU의 제지로 인해 계획을 중단하였다. 2022년 11월에도 6호기 원전에서 문제가 발생하여 가동이 멈추기도 하였으나 불가리아 정부는 원전에 전혀 이상이 없음을 공표하며 여전히 많은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 주목할 만 한 것은 2000년대 초반까지 불가리아의 재생에너지 생산이 ‘0%’였으나 점차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는 것이다. 이는 2007년 EU 가입 전후를 기점으로 유럽 그린딜(European Green Deaal) 등 기후변화 위기 대응에 맞서 2030년까지 탄소배출 감소량 목표를 55%까지로 계획한 바, EU 회원국인 불가리아 또한 감소량 목표를 위해 탄소배출을 줄이는 동시에 재생에너지 비율을 높여야 하는 의무를 갖고 있기에 나타난 결과다. 불가리아 환경부에 따르면 불가리아는 2030년까지 전체 에너지원의 27%를 신재생에너지로 생산할 계획이다. 불가리아가 EU에 가입한 2007년에는 신재생에너지 최종 소비비율이 9.1%로 EU내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불가리아는 EU 규정(EU Directives 2003/30/EC) 준수를 위해 2020년까지 전체 에너지원의 16%를 신재생에너지로 변경해야 하기 때문에 외국인직접투자(FDI) 비율을 높이는 등 국가적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노력해 왔다. 또한 2003년과 2006년 「신재생에너지법(Renewable Energy Act)」과 2007년 「신재생ㆍ대체에너지법(Renewable and Alterative Energy Sources and Biofuel Act)」을 입법, 시행하며 법적 토대도 마련하였다. 이러한 노력으로 불가리아는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불가리아의 에너지정책
최근 불가리아의 에너지 정책은 EU의 에너지 정책에 발맞추어 진행되고 있다. 불가리아와 루마니아는 EU의 회원국으로서 EU 공통의 에너지 정책을 따르고 있으며, 에너지 정책의 주요 목표는 에너지 효율 및 에너지 안보 확보, 탈탄소화, 천연가스 공급원 다양화 등이다. 특히 두 국가는 솅겐조약과 유로존가입을 희망하고 있으며 원활한 EU 보조금 유입을 위해 다른 회원국들보다 EU 기조를 더 잘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비세그라드 그룹(V4: 폴란드, 체코, 헝가리, 슬로바키아) 국가와 마찬가지로 불가리아와 루마니아는 EU의 ‘Fit for 55’, ‘2020 에너지와 기후 패키지,’ ‘2030 Green paper,’ ‘에너지 로드맵 2050’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화석연료 사용량을 감소시켜 탄소배출을 줄이는 동시에 에너지 효율을 높여야 한다.

또한 불가리아는 2022년 3월 열린 EU 정상회의에서 ‘베르사유 선언(Versailles Declaration)’을 통해 대러 에너지 의존도를 완화하고 대러 및 대벨라루스 제재 강화에 동참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였다.이와 더불어 이번 사태를 계기로 에너지 공급선을 다변화하여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도를 3분의 1까지 줄이는 계획(REpower EU)을 갖고 있다. 이를 위해 불가리아는 ‘2021~2030 국가 에너지 및 기후 계획’을 세웠으며, 그에 따라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을 30%로 늘리는 동시에 신재생에너지의 총 에너지 소비 비중을 최소 27% 늘릴 것으로 예상된다. 또 불가리아 내 신재생에너지 생산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태양광 발전을 통해 2030년 말까지 설비용량을 2,645메가와트(MW)로 확대할 예정이다. 불가리아 ЕСО(Електроенергиен Системен Оператор, Electricity System Operator)는 2020년부터 4년 동안 불가리아 영토 내 태양광 발전소 1,600MW, 바이오매스 화력 발전소 219MW, 풍력발전소 700MW을 추가적으로 설치할 예정이다.

러시아 에너지 무기화를 탈피하기 위한 불가리아의 과제
불가리아는 에너지 다변화를 위해 새로운 가스관 연결을 서둘렀다. 그중 하나가 불가리아와 그리스를 연결하는 가스관 IGB(Interconnector Greece- Bulgaria)이다. 총연장 182km의 IGB는 그리스로 수입되는 아제르바이잔산 가스를 불가리아를 포함한 중동부 유럽 지역에 연간 최대 30억 입방미터(3 bcm) 규모로 수송할 수 있다. IGB는 EU 전체 지역에 반드시 필요한 또 다른 에너지 운송로이며 EU가 유연하게 통제할 수 있는 새로운 노선이다. 이 노선이 잘 운영된다면 EU의 회원국인 불가리아뿐만 아니라 가입 희망국인 서부 발칸 유럽 국가들, 몰도바 그리고 우크라이나에도 에너지 공급 안보를 강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공급이 원활해진다면 EU는 흑해 연안 2개 국가와 함께 서부 발칸 유럽에도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동시에 러시아의 에너지 위협에도 대처할 수 있다.

이렇듯 앞서 살펴본 것처럼 불가리아는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고 러시아산 에너지로부터 독립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불가리아는 EU 회원국으로서 러시아에 대한 공통의 정책을 지지해야 한다. 현재 불가리아는 러시아 측에서 발표한 적대 국가 목록에 포함되어 있지만 러시아와의 관계는 중단되지 않았다. 앞으로 불가리아의 가장 중대한 과제는 러시아로부터 에너지 독립과 더불어 러시아와 EU 사이의 관계 정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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