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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에르도안 대통령의 20년 집권과 대외 정책 변수

튀르키예 이희수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2023/06/30

에르도안 대통령, 2028년까지 재집권 성공
튀르키예 대선 향방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았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Recep Tayyip Erdoğan) 현 대통령의 재선 여부는 미국의 탈(脫)중동 정책,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간의 전격적인 화해, 시리아 내전 종식 임박, 지각변동을 가져오는 산유국들의 탈석유 미래 비전 프로그램들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 중동 전체는 물론 유럽연합(EU), 미국, 러시아, 중앙아시아 튀르크계 국가들에 미치는 영향 또한 작지 않기 때문이다. 튀르키예 국내 상황에서는 80%가 넘는 인플레이션, 10%가 넘는 실업률, 20년 장기 집권이 불러오는 특정 세력의 경제적 권력 독점, 매너리즘에 빠진 관료주의, 언론과 학문적 자유의 위축, 삼권분립의 위기 등에 설상가상으로 올해 2월 6일의 대지진 재앙 등으로 여당 후보인 에르도안 현 대통령은 최대의 위기를 맞았고, 어느 때보다 정권 교체의 가능성이 높은 형국이었다. 필자는 긴박한 선거 상황을 지켜 보기 위해 올해 1월 중순 방문에 이어, 5월 14일 1차 투표 결과 어느 후보도 과반수 확보에 실패하자 5월 28일 2차 결선 투표 모니터링을 위해 튀르키예로 달려갔다. 

튀르키예 국내는 물론 서방의 여론 조사 결과를 토대로 야당 후보가 내내 앞선 상황이었고 막판 일부만이 박빙을 예측해 왔다. 그러나 대선 결과는 에르도안 현 대통령의 무난한 승리로 끝났다. 5월 4일 1차 투표에서 49.52%의 득표율로 과반 득표에 실패하여 치러진 5월 28일의 결선투표에서 52.18% 지지를 얻은 에르도안 후보가 47.82%를 득표한 공화인민당 야당 후보 케말 클르츠다로을루(Kemal Kılıçdaroğlu) 후보를 약 4.4%, 233만 표 차로 따돌렸다. 

야당 대선 패배의 가장 큰 요인으로는 후보 그 자체를 꼽고 싶다. 정권 교체의 강한 민심과 여론 조사 결과에도 불구하고 야당 연합은 개혁 이미지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평생 야당 총재로 달콤한 제2 권력을 누려 온 75세의 노회한 케말 클르츠다로을루를 선택했다. 그는 유세 기간 내내 새로운 비전 제시나 미래지향적 국가 발전의 청사진보다는 에르도안 정부의 실책과 정권 교체만을 목놓아 외쳤다. 이러한 전략 아닌 전략을 구사한 결과 야당은 젊은 세대나 변화를 바라는 다수의 중도층을 끌어들이는 것은 고사하고 반(反)에르도안 극성 지지층을 묶어 두는 것에도 실패하고 말았다.

같은 날 87개 선거구에서 권역별 비례대표제로 선출하는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집권당 정의발전당(AKP)이 600석 중 268석을 얻어 과반 확보에는 실패했지만, 대선 정국부터 연정을 형성했던 보수정당 국민행동당(MHP) 의석을 합치면 총 323석이 확보되어 ‘국민연합’ 연정이 안정적으로 과반의석을 차지하게 되었다. 

경제 기조 정상화·화해와 포용의 국정 운영 기대
대선 직전 만나본 여당인 정의발전당(AKP)의 이너서클 핵심 멤버들은 어떻게 선거에서 승리할 것인가 보다는 이미 대선 이후의 후계 구도를 논의하는 분위기였다. 그만큼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1차 투표에서 에르도안 후보가 과반 확보에 실패한 것이 그나마 20년 집권 세력들에게 여론의 준엄함을 일깨워 준 교훈이 되었을 것이다. 나아가 야당이 차지하고 있던 이스탄불, 앙카라, 이즈미르 3대 도시에서 집권당이 모두 패배하고, 쿠르드계 주민들이나 지진 피해 지역의 민심이 상당 부분 돌아섰다는 뼈아픈 결과를 받아들이면서 2028년까지 집권할 에르도안 정권의 정책은 상당한 변화와 개혁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큰 줄기는 국정 기조의 정상화다. 장기 집권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과 설상가상으로 올해 2월 6일에 발생한 두 차례 대지진으로 경제·사회 를 막론한 총체적 위기에 빠진 상태에서 치러진 대선의 승리를 위해 인기영합적 공약과 민족주의적 강경 외교, 표심을 잡기 위한 단기처방 경제정책 등을 제시했으나, 앞으로는 혼란에 빠진 민생 경제를 수습하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

2022년 말 튀르키예의 인플레이션은 무려 85.5%로 치솟아 최근 24년 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자 문제에 민감하고 거부감을 가진 보수 이슬람 지지계층의 표심을 의식하여 시장경제 원리에 반(反)하는 금리 인하 정책을 연이어 시행하고, 반(反)시장 경제 정책을 고집해 온 것이 이러한 경제 위기의 결정적인 요인으로 지적되어 왔다. 투자 감소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관광객 급감, 러시아 의존 경제의 후유증으로 지난 5년간 달러 대비 터키 리라화 가치는 80% 이상 하락했고, 선거 직후 2주 사이에도 20% 가까이 추가 하락했다. 3월 기준으로 향후 1년 이내에 상환할 단기 외채는 2,003억 달러(한화 약 256조 6,203억 원)를 넘어섰고, 그중 392억 달러(한화 약 50조 원)는 튀르키예 중앙은행이 상환해야 할 액수이다. 2023년 4월 공식 인플레이션은 44%로 다소 진정되었으나 OECD는 튀르키예의 2024년 인플레이션 전망치를 여전히 40.8%로 예측하고있다. 이런 상황에서 에르도안 신정부의 최우선 과제는 경제 기조의 정상화이고, 이를 위한 강력한 정책 드라이브가 이어질 전망이다. 그 결과 이미 에르도안 정권에서 재무장관과 경제담당 부총리를 역임했던 경제 원칙론자인 메흐멧 심섹(Mehmet Simsek)을 재무장관에 임명했고, 그와 정책 조율을 담당할 중앙은행 총재로 41세의 젊은 여성 국제 금융 전문가 하피제 가예 에르칸(Hafize Gaye Erkan)을 전격적으로 발탁했다. 에르칸 총재 내정자는 미국 프린스턴 대학을 졸업하고 골드만삭스, 뉴욕 소재 부동산 금융 그룹 그레이스톤 등에서 경력을 쌓은 전문 경영인이다.

무엇보다 남한 면적에 버금가는 8만여 평방킬로미터(㎢) 지역에 피해를 준 지진 복구에 약 1,000억 달러(한화 약 130조 원)가 소요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자금 조달과 지원 확보가 시급한 상황이다. 유럽연합(EU)을 비롯한 서방 세계는 물론 이웃 산유국들과의 관계 개선이 절실한 배경이기도 하다. 튀르키예와 EU의 당면한 가장 중요한 이슈는 스웨덴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 승인 문제다. 튀르키예가 테러조직으로 간주하고 있는 반(反)체제 쿠르드 노동당(PKK)에 대한 스웨덴 정부의 미온적인 조치를 빌미로 회원국의 만장일치 승인을 필요로 하는 스웨덴의 NATO가입 승인을 튀르키예가 유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선 과정에서 강경한 어조로 스웨덴을 비난하던 에르도안 대통령이 서방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을 위하여 입장을 급선회하여 7월 리투아니아에서 열리는 NATO 정상 회담 이전에 전격적인 합의에 도달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국내의 PKK, 시리아의 YPG 등 쿠르드족과의 갈등 봉합 시급
일시적인 약속과 타협이 이루어지더라도 쿠르드 문제는 앞으로도 튀르키예와 EU의 관계를 위협하는 요인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400년 이상 오스만 제국의 식민 지배를 직접 경험하면서 튀르키예의 부상을 가장 큰 위협으로 느껴온 유럽 사회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쿠르드 이슈를 튀르키예 내부 혼란과 분열을 획책하는 유효한 전략 카드로 사용해 왔다. 튀르키예 내 1,500만 명이 넘는 쿠르드인들이 자치 독립을 요구하고, 유럽 내 수백만 명의 쿠르드인들이 연대 투쟁의 강도를 높여 나간다면 튀르키예 정부로서는 뾰족한 대안이 없을 뿐만 아니라 쿠르드인 박해는 곧바로 유럽과의 관계 파탄을 가져올 개연성이 매우 크다.     

대미 관계는 훨씬 복합적이다. 2015년 튀르키예에서 발생한 쿠데타 배후세력의 지도자로 지목된 후 미국에 망명 중인 페툴라 귤렌(Fethullah Gülen)의 송환 문제로 양국 관계가 급속히 악화된 이후, 친(親) 러시아 외교정책을 이어가던 에르도안 정부가 전격적으로 러시아 방공 시스템인 S-400 미사일을 도입하여 실전 배치하고, 이에 대한 응징으로 미국은 오랫동안 공동 개발에 참여해 오던 최신 전투기 F-35 공급 프로그램 계획을 백지화 하면서 양국 관계는 지난 100년 중 최악의 상황을 맞이했다. 그러나 에르도안 대통령 재선 이후 조 바이든(Joe Biden) 미국 대통령이 가장 먼저 축하 전화를 걸고, 미국과 긴밀한 관계에 있던 에르도안 대통령의 최측근 정보부장인 하칸 피단(Hakan Fidan)을 외무장관으로 임명하면서 양국 간 관계 개선의 청신호가 켜진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미국과의 관계 개선 여부에 따라 시리아 내전 해결도 급물살을 탈 수 있다. 양국 관계 개선의 또 다른 걸림돌인 시리아 내 쿠르드 민병대인 YPG 문제에 대한 타결 전망이다. 그동안 YPG는 미국과 협조하면서 IS 괴멸에 앞장서 왔고 사실상 시리아 내 미국 이익의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지만, 튀르키예 정부는 이들을 자국 내 쿠르드 노동당(PKK)과의 연계 문제 및 안 보 위협세력으로 간주하여 강력한 소탕 작전을 계속해 왔다. 

미국과 YPG 제어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면 튀르키예는 그동안의 반(反) 바샤르 알아사드(Bashar al-Assad) 정책1) 을 중단하고 시리아 정부와의 관계 개선에 나설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미 사우디아라비아가 시리아와의 외교 관계 복원과 아랍 정상회의 복귀, 시리아 지원 방향 등을 논의하고 튀르키예와 시리아 내전 해결에 공동보조를 맞춰왔던 친(親) 시리아 성향의 러시아와 이란과의 관계 유지를 위해서도 에르도안-아사드 관계의 재정립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시리아 상황이 안정되면서 터키 내 약 400만 명의 난민 중 이미 50만 가까운 시리아인들이 북쪽 국경을 통해 고향으로 돌아갔고, 튀르키예 국적을 취득한 수만 명의 시리아 난민들이 이번 선거에 참여했다. 향후 100만 정도의 시리아인들이 추가로 튀르키예 국적을 취득할 전망이다. 국적 취득이라는 카드는 집권당에 절대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에 시리아 난민 처리 문제가 첨예한 국내정치 이슈로 등장했고, 경제적 부담이 큰 시리아 난민 수용과 귀환 문제 타결을 위해서도 튀르키예-시리아 간의 새로운 협력이 반드시 필요해 보인다. 

유럽(미국)-러시아-중동-중앙아시아 간 전통적·전략적 균형외교 복원 
이웃 중동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도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그동안 중동 국가들 간 대결 구도의 한 축으로 튀르키예는 카타르에 군대를 파병하면서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 등과 경쟁하고 이집트·이스라엘과도 불편한 관계를 지속해 왔다.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Jamal Khashoggi)가 이스탄불의 사우디 총영사관에서 살해된 사건 배후로 사우디 왕세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Mohammed bin Salman Al Saud)의 책임 여부를 두고 악화된 튀르키예와 사우디아라비아 관계는 최근 다시 화해와 복원의 길을 걷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던 이집트 민선 대통령 무함마드 무르시(Muhammad Mursi)가 이집트 군부 쿠데타로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그의 정당 주체인 무슬림형제단에 대한 가혹한 박해로 이집트 군사정권과 날을 세웠던 에르도안 대통령은, 재선을 계기로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Abdel Fattah el-Sisi) 대통령의 축하 전화를 받았고, 양국 정상 간 상호 초청으로 화해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고 있다. 중국과의 관계는 개선보다는 현상 유지 상태이다. 중국 내 최대 튀르크계 소수민족인 위구르 자치 지역의 인권유린상황에 대한 인식 조율과 튀르키예 정부의 태도가 가장 큰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이슬람의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마저 중국 당국에 의한 위구르 소수민족 인권 탄압을 용인하는 추세이고, 주변 아랍 국가들도 점차 중국의 눈치를 보면서 튀르키예의 입지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셰일 가스 상용화로 이미 세계 최대의 에너지 패권국인 미국이 더이상 중동의 원유를 도입하지 않는 반면 일일 175만 배럴에 달하는 엄청난 물량을 중국이 수입하는 상황에서 아랍 산유국들이 중국의 입장에 반기를 들기는 매우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지구상에서 한국을 가장 좋아하며 형제의 나라라고 부른다는 튀르키예와 한국의 관계도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되어 나갈 전망이다. 우선 에르도안 대통령은 한국과의 우선 협력을 강조해 왔다. 전통적인 경제협력과 문화 교류를 넘어 한국이 6.25 이후 이룩한 과학 기술의 도입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어, 과학 기술 협력과 교류·방위산업 수출 확대와 기술 이전·과학 기술 인재 양성을 위한 KAIST 같은 첨단 기술 교육 기관의 설립, 한국형 원전 사업 참여 요청 등의 협력분야 확대가 기대된다. 

튀르키예 국민과 정부가 가진 현대사의 가장 큰 트라우마는 600년 오스만 대제국의 붕괴와 제1차 세계대전에서의 패배다. 이런 관점에서 튀르키예 외교정책의 가장 큰 특징은 시장경제와 서방국가와의 협력적 관계 설정이었고, 이런 구도에서 이스라엘이나 러시아와도 우호 선린 관계를 유지하는 중간자적 균형외교를 지향해 왔다. 재집권한 에르도안 대통령이 2028년까지 마지막 봉직이라는 대국민 이미지를 만들어 가면서 전통적인 외교 기조의 방향을 회복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셀축 바이락타르(Selçuk Bayraktar)2)를 중심으로 하는 50대의 젊은 차세대 후계 논의가 내부 시나리오대로 돌아가지 않거나, 또 다른 국가 위기 상황의 돌발변수가 등장한다면 영구 집권의 길로 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 각주
1) (편집자 주)튀르키예 정부는 2011년 시리아 민주화 운동 당시부터 시리아에 강력한 경제 제재를 부과했고, 또한 시리아 내전에서는 자국 쿠르드족 압박을 위한 방편으로 수니파 반군을 지원하여 알아사드 정부와 갈등을 빚어왔다. 
2) 셀축 바이락타르(Selçuk Bayraktar): 에르도안 대통령의 둘째 사위. 터키의 최첨단 방위산업체인 바이카르(Baykar Defense)의 CEO로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고성능 드론이나 무인 전투기 개발 등 터키의 미래 방위 기술의 독자 연구와 무기 개발로 터키 국민의 자긍심 고취는 물론 국제적 위상 강화와 경제적 이익 창출에도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국민적 인기가 치솟고 있고, 튀르키예 대권 후계자로 늘 회자 되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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