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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영국의 EU 협약 개정 추진을 통해 본 동유럽 이민자 논쟁

중동부유럽 일반 김철민 한국외국어대학교 동유럽학대학 교수 2015/06/15

 현지 시각으로 2015년 6월 10일, 영국 하원은 브렉시트(Brexit), 즉 영국이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할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 시행 법안을 찬성 544표, 반대 53표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시켰다. 물론, 법안에 따르면 국민투표는 2017년 말까지 치르도록 되어 있고, 이번 하원에서 찬성표를 던진 노동당과 자유당 또한 여전히 EU 잔류를 원하는 등 실질적으로 영국이 EU에서 탈퇴할 것인가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더불어,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더라도 영국인 응답자의 55%가 EU 잔류를 희망하고 있으며, 영국상공회의소(BCC: British Chamber of Commerce)가 영국 기업 3,200개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에서도 응답한 영국 기업들의 약 61%가 EU 탈퇴가 사업에 불이익을 가져올 것으로 예측하기도 했다. 또한, 국익 차원에서 보더라도 영국이 EU에서 탈퇴할 경우 스코틀랜드의 분리 독립 문제 그리고 파운드화의 가치 추락 등에 직면할 것으로 보여, 실제로는 영국의 이번 조치가 단지 엄포성에 그칠 것이라 예측되고 있다.
 
  영국이 EU 탈퇴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가장 큰 이유에는 2014년 이래 루마니아와 불가리아에게까지 노동자 이민 자유권이 보다 확대된 이후로 급증하고 있는 동유럽 출신 이민자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한 해 10만 명을 넘지 않던 영국의 순 이민자 수는 2000년대 초반 이미 20만 명을 넘어섰다. 2010년 총선을 앞두고 캐머런은 순이민자 수를 10만 명으로 줄이겠다고 약속했지만, 현재 매년 한 해 동안 영국으로 들어오는 동유럽 이민자는 약 60만 명 정도로 추산되는 등 오히려 그 숫자가 더 크게 증대되고 있는 상황이다. 즉, 자국 경제가 어려운 현실 속에서 이민자들을 향한 복지까지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영국 내 반(反)이민자 정서를 이끌어냈다 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북부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밀려드는 난민 문제는 영국인들뿐만 아니라 EU 회원국들 사이에서 심각한 분열 양상을 일으키고 있다. 작년에만 빈곤과 내전에서 탈출하려는 2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지중해를 넘어왔으며, 이중 수천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올해에도 지난 6월 6-7일 사이 국제구조대가 북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향하던 난민 5,900명을 구조하였지만, 이탈리아와 그리스에는 4만 명이 넘는 난민들로 인해 수용 능력에도 이미 그 한계점에 도달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 난민들을 EU 회원국들이 서로 분배할 것을 의논하자는 회의가 오는 16일로 예정되어 있지만, 합리적 결과 도출에는 회의적인 반응이 큰 실정이다.

  이처럼, 유럽은 요즘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밀려드는 난민에다 동유럽 노동자들의 서유럽 이민 증가로 심각한 사회, 정치 갈등을 겪고 있는 중이다. 특히, 영국 등 서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EU 회원국들은 2004년 동유럽 지역으로의 EU 확대 이후 급증하는 저임금 동유럽 노동자와 이민자 문제로 인해 인내의 한계점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한 예로, 영국은 2014년 이민자 수가 52% 증가해 총 31만 8천 명이 순 유입되었는데, 이 수치는 전년 대비 52% 증가한 것으로 2005년 노동당 정권 하에서 이민자 수가 급증했던 32만 명에 육박한 숫자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보수당은 최근 불법 이민자들의 임금을 압류하는 법률 추진 및 이민자 주택 등을 비롯한 여러 공공 서비스 제한을 통해 이민 억제 정책을 추진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EU 협약 개정과 회원국 전체의 지지가 필요한 상황이다. 따라서 캐머런(David William Donald Cameron, 1966-, 재임 2010- ) 총리는 다음 총선 공약으로 이민자 문제를 담은 EU 협약개정을 협상한 뒤 2017년까지 EU 탈퇴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민자 이동의 자유권 및 지원을 둘러싼 영국의 EU 협약 개정 추진에 대한 동유럽 각국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이에 대해 동유럽 국가들은 이동 자유권은 EU의 가장 큰 성취 중 하나로 ‘레드라인(협상 한계선)’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동유럽 출신 노동자들이 이민자로 불리기를 원하지 않으며, 그들 모두 EU 역내 어느 나라에서도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EU 시민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영국과 우방 국가인 폴란드 또한 EU 협약 개정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 의논할 의향이 있지만, 영국이 이번 EU 협약 개정 여부를 둘러싸고 EU 탈퇴까지 고려한다는 점에 대해선 이민자 이동 자유권을 둘러싼 논의에 대해서만큼은 영국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실제, 동유럽으로의 EU 확대 이후 진행되고 있는 동유럽 이민자들의 서유럽 지역으로의 급증은 EU 역내 회원국들에게 여러 도전과 시련들을 안겨주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중 하나로는 서유럽으로 유입되는 동유럽 이민자들의 증가가 최근 EU의 경제 회복과 노동 시장 확대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노동 임금 상승에는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실제, 얼마 전 영국의 마크 카니(Mark Carney, 1965- , 재임 2013- ) 중앙은행(BoE: Bank of England) 총재가 소비자물가 보고서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급증하는 이민자 문제가 영국 경기 회복의 위험 요인이 되고 있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는 최근 수년간 노동시장에서 대규모 동유럽 이민자 유입으로 인해 노동력 공급이 상당히 확대되어 왔으며, 이로 인한 더딘 임금 상승은 경제 성장의 위험 요소가 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독일의 경우를 보더라도 이미 비숙련 직종의 노동자가 전체의 11%에 달하는 상황에서, 독일로 이주한 루마니아·불가리아인이 이미 그 세 배나 되는 30% 이상 됨에 따라 이들에 대한 사회문제가 계속해서 확대되고 있는 중이다.

  둘째, 이민자 문제로 인한 서유럽 사회의 분열과 불안 증대, 실업률 증대는 연간 이민자 수 제한과 함께 EU와 유로존 탈퇴를 주장하는 극우 정당들의 정치적 영향력 확대를 낳고 있다. 현재 EU는 역내로 진입하려는 역외 국가들의 난민 문제와 함께, 동유럽에서 서유럽 선진국으로 이주하려는 이민자 문제가 정치 이슈화됨에 따라 일련의 사회적 혼란을 겪고 있다. 따라서 영국, 독일, 프랑스 심지어 북유럽 국가에서도 이러한 난민 및 이주 노동자에 반대하거나 차별적 대우를 정당화하려는 움직임이 급격히 확대되고 있다. 그 사례로, 프랑스의 극우 정당 ‘국민전선(FN: Front Nacional)’ 당 대표 마린 르펜(Marine Le Pen, 1968- , 재임 2011- )은 지난 도의원 지방선거에서 전통적인 좌파와 우파 양당 체제에서 벗어나 3당 체제를 구축하는 데 반(反)이민자 문제를 주요 이슈로 내걸며 지지를 획득하였다. 청년 실업률이 25%에 육박하는 최악의 경제 상황 속에서, 북아프리카 출신 무슬림들과 동유럽 이민자들이 저임금 일자리를 빼앗고 사회 불안을 일으킨다고 주장하는 마린 르펜의 주장이 프랑스 국민들의 마음을 흔들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영국에서도 EU 탈퇴를 주장하며 2014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극우성향의 ‘영국 독립당(UKIP: UK Independent Party)’또한 그동안 이주민들에게 제공했던 5년간 복지혜택을 없애고, 비숙련 노동자의 이민을 5년간 금지 그리고 숙련노동자 이민자 또한 연간 5만 명으로 제한해야 한다며 주장하고 있다. 실제, 2014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EU 이외 지역 출신 이민자들과 EU 출신 이민자들에 대한 복지혜택 반대 지지가 각각 40%와 29%에 달하는 상황에 이르고 있다.
 
  셋째, 동유럽 이민자 증대는 동유럽 내에서도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데, 대표적인 것인 이민자 급증으로 인한 심각한 인구 감소와 우수한 인적 자원들의 유출 문제인 브레인 드레인(Brain Drain) 현상이라 할 수 있다. 2014년 부 이후로 루마니아나 불가리아 노동자에 대한 역내 취업 제한의 빗장이 완전히 풀렸고, 이에 따라 이들 노동자들의 서유럽 지역으로의 대규모 이동이 진행 중에 있다. 2013년 7월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에 따르자면 루마니아는 중국에 이어 국제이주 2위국으로, 전체 700만 명의 노동인구 중 공공부문에 종사하는 110만 명을 제외하고, 350만 명이 이미 외국으로 떠났으며, 그 수는 더욱 더 급증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루마니아와 불가리아의 1인당 월급이 독일의 아동수당에도 못 미치고, 최저임금 또한 독일, 프랑스에 비해 8-9배 차이가 나는 상황에서 이들의 서유럽 이주는 어쩌면 당연한 현상인지도 모른다.

  영국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는 이민자 쿼터제 및 이민자 규제를 위한 EU 협약 개정 추진은 EU 회원국 내 자유 원칙 중 거주와 인적 이동의 자유 원칙을 훼손하는 문제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것은 진정한 EU 회원국으로 대접받고 싶어 하는 동유럽 국가들의 반발을 크게 불러일으키고 있다. 보이는 현상과 달리 그 속을 깊이 들여다보면 동유럽으로의 EU 확대와 이들 노동자들의 서유럽 지역으로의 이주는 실질적으론 부정적인 면보다는 긍정적인 면을 보다 지녀왔다고 할 수 있다. 유니버시티 칼리지(University College) 런던 연구팀은 2014년 11월 발표한 연구에서 2000년 이래 영국에 온 EU 이민자들이 2001-2011년 동안 영국 공공재정에 200억 파운드 이상을 기여했으며, 이것은 영국이 68억 파운드를 교육비로 투입해서 얻을 생산성 있는 인력자원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현재의 양상으로 볼 때, 향후 브렉시트 여부를 판가름할 EU 협약 개정 협상은 영국과 EU 회원국들 그리고 동유럽 국가들과의 힘겨루기 양상으로 이어질 것이라 예상되고 있다. 동유럽 노동자들이 EU 시민으로서 유럽 어느 국가에서나 자유롭게 일할 수 있을지, 아니면 EU 내에서 서러운 천덕꾸러기 신세로 취급받게 될지는 이번 EU 협약 개정을 둘러싼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 드러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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