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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콜롬비아 사회 불안과 민주주의

콜롬비아 Felipe Botero Universidad de los Andes Associate Professor 2020/04/20

서론
2019년 라틴아메리카에서는 대규모 시위 등 사회 불안 현상이 나타났다. 시위의 배경에 공통적인 이유가 있지만, 국가마다 각기 다른 원인도 있었다. 예를 들어 칠레 시위는 피노체트(Pinochet) 독재정권 때부터 내려온 불만(불평등)이 표출된 사건이었다. 볼리비아 시위는 에보 모랄레스(Evo Morales)  대통령의 네 번째 임기를 위한 부정선거 논란으로 촉발되었다.  콜롬비아의 경우에는 정부의 노동 및 연금 개혁설로 인해 촉발되었다. 

이러한 시위 현상은 지난 2010년대 초 중동에서 있었던 민주주의 요구 시위에서 이름을 딴 ‘라틴의 봄’(Latin American Spring)이라는 표현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시위가 각기 다른 것이든 혹은 누군가에 의해 조장된 것이든 관계없이, 불만에 찬 시민이 대거 결집했다는 것은 정치 시스템이 무질서에 빠져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물론 민주적인 정부에서 시위는 시민들의 보장된 권리이다. 하지만 시민들이 거리로 나온 이유가 된 사회적 폐해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콜롬비아 및 기타 라틴아메리카 지역에서 발생한 시위의 정도와 강도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 

본 연구는 여론 조사 데이터를 바탕으로 민주적 가치에 대한 콜롬비아 시민의 의견 및 태도를 살펴보고자 한다. 즉, 주관적⸱질적 측정을 시행한다. 이를 위해 필자는 미주 대륙의 34개국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대표 조사인 아메리카바로미터 (The AmericasBarometer)의 데이터를 사용한다.1)  콜롬비아에서 동 조사는 2004년부터 시작되었다. 입수 가능한 최신 데이터는 2018년 데이터로, 2019년 데이터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매 조사당 대표 표본수는 약 1,500명이다. 이들 데이터를 바탕으로 지난 13년간 민주주의 및 정부에 대한 콜롬비아 국민들의 믿음이 어떻게 변했는지 그 추이를 살펴볼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민주주의의 가치
콜롬비아에 민주주의적 가치는 얼마나 뿌리 깊게 박혀 있을까? 이웃 국가와는 달리 콜롬비아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놀라울 정도로 안정적인 민주주의 체제를 운영해 왔다. 1950년의 콜롬비아에서는 라틴아메리카 남부 또는 중앙아메리카 지역이 겪은 바와는 상당히 다른, 온건 독재로 인한 잠깐의 공백이 있었다. 1958년 이후로 콜롬비아에서는 치열한 선거가 정기적으로 치러졌다. 이는 시민들에게 있어 민주주의를 오롯이 받아들이기에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역내 이웃국의 사례를 통해 독재의 심각한 악영향을 지켜볼 수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4~2018년 기준, 전체 콜롬비아 국민 가운데 ‘”민주주의가 다른 정부 형태보다 우수하다”는 데 동의하는 비율은 65%에 불과하다. 즉, 인구의 1/3이 이 명제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콜롬비아 국민 2/3가 권위주의보다 민주주의를 소중하게 여긴다는 점에서, 국민 과반 이상이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지지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다른 형태의 정부보다 우수하다는 데 동의하지 않는 국민 비율이 꽤나 높다는 것은 상당히 당황스러운 일이다.

<그림 1>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이러한 의견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계속 변화해 왔다.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들의 평균 지지율이 65%를 유지해 온 것은 사실이나, 지지율은 매년 변화해 왔다. 보통은 60%대 후반에 머무르는 이 수치는 2004년에는 70%까지 상승하기도 했고, 2016년에는 53%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이는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가 콜롬비아 국민 대다수에 단단히 뿌리내린 것이 아니고, 계속 변화한다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15~20%는 ‘민주주의 부동층’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캐나다, 코스타리카, 칠레, 우루과이, 미국 등의 국가에서는 민주주의가 다른 형태의 정부보다 우수하다고 믿는 시민의 비율이 75%에 육박한다. 콜롬비아의 민주주의 지지층 비율이 훨씬 낮다는 것은 경각심을 가져야 할 사안일 수 있다. 콜롬비아 내 국민 대다수가 비민주국가를 지지할 가능성, 민주적 자유의 약화를 반대하지 않을 가능성이 열려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의견을 가진 시민이 누구인지 이해하고, 나아가 이들이 그러한 견해를 가지는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그림1

마찬가지로, 민주주의의 기능에 대한 콜롬비아 국민의 평가 또한 부정적 추이를 보이고 있다. 여기서의 핵심은 사람들이 추상적 개념으로서의 민주주의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아니라, 민주주의가 콜롬비아에서 실질적으로 기능하는 방식에 대해 국민이 얼마나 만족하고 있는지 여부이다.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는 13년을 기준으로, 평균적으로 국민의 48.6%가 국내 민주주의의 기능에 대해 ‘만족’ 또는 ‘매우 만족’한다고 답했다. 나머지 51.4%는 ‘불만족’ 또는 ‘매우 불만족’으로 응답했다. 즉, 평균적으로 콜롬비아 국민 과반수가 민주주의 체제의 성과에 부족함을 느끼고 있다. 평균치만 살펴볼 때 그 기저에 숨어 있는 추이를 놓치게 될 때가 있는데, 바로 이 경우가 그렇다. 민주주의 성과에 대한 불만족도는 지난 5년 동안 눈에 띄게 나빠졌다. <그림 2>에서 나타난 것처럼, 2013~2018년의 기간 동안 불만족 또는 매우 불만족을 표한 국민의 비중은 68%로 증가했다. 국민의 요구에 대한 정부의 대응 및 정부 자체에 관한 비판의 수준이 높아져, 국민 가운데 압도적 다수가 민주주의에 상당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그림2


요약하자면, 콜롬비아에서 민주주의는 이상적인 개념으로서도 정부의 구체적인 형식으로서도 입지를 잃고 있다. 국민 과반수 이상이 여전히 다른 정부 형식에 비해 민주주의를 선호하나 지지 비율은 변동을 거듭하고 있다. 한편 국내에서 민주주의가 기능하는 방식에 대해 만족하는 사람의 수는 빠르게 줄어들어 최근 몇 년 동안에는 30%를 겨우 웃돌고 있다. 이는 콜롬비아인이 민주적 가치를 귀중하게 여기지 않으며, 이러한 추세가 지난 몇 년 동안 악화되어 왔다는 것을 시사한다. 아래에서는 왜 이런 현상이 빚어졌는지, 그리고 콜롬비아 민주주의의 어떤 측면이 특히 우려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시민 참여와 정치에 대한 관심
우리는 민주주의 체제의 다양한 구성요소를 살펴보며 콜롬비아 시민이 이들 각각의 요소를 신뢰하는지 분석할 수 있다.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로 하여금 잘 기능하는 민주주의의 필수 요소인 여러 주요 제도에 대한 신뢰도를 100점 만점의 척도로 평가하도록 했다. 이들 요소의 예로는 정부 3부, 정당, 선거, 경찰, 군대 및 대중매체 등이 있다. 전반적으로 콜롬비아 국민의 신뢰도가 가장 낮은 것으로 드러난 기관 및 제도는 정당(33), 선거(39), 의회(45)로, 이들 모두 100점 만점 척도에서 절반에 못 미치는 점수를 거두었다. 대법원(52), 경찰(54), 행정부(54)에 대해서는 중간 정도의 신뢰 수준이 나타났다. 그러므로 가장 신뢰받는 기관 및 제도는 이들을 제외하고 남은 언론(59)과 군대(62)이다. 단, 비교적 신뢰도가 높은 것으로 드러났지만 신뢰도 점수가 객관적으로 높은 수준은 아니었다. 이는 국가 제도에 대한 시민의 신뢰도가 전반적으로 높지 않음을 시사한다. 

더불어 아래 <그림 3>에서 드러나듯이 국민의 신뢰도는 점점 악화되어 왔으며, 지난 5년 동안의 하향세는 특히 두드러진다. 예를 들어 2018년 기준으로 50점 이상을 거둔 민주주의 요소는 뉴스 매체와 군대(각각 53점, 57점)가 유일하고, 나머지 모든 요소는 절반 미만의 점수를 거두는 데 그쳤다. 국가적 제도에 대한 국민 신뢰도가 이렇게 낮은 것을 감안하면, 콜롬비아 국민의 마음에서 민주주의가 차지하는 자리가 줄어들고 있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림3


물론, 민주주의는 정치조직 형태에 대한 개인의 선호나 제도적 협의에 대한 개인의 신뢰를 훨씬 넘어서는 가치를 가지고 있다. 민주주의는 공무 및 정책적 선택지를 논할 뿐 아니라 공동체의 삶에 필수적인 관계망을 탄탄히 구축하기 위해 시민 생활에 참여하는 역동적 시민의 존재를 함의한다.2) 안타깝게도 콜롬비아 국민들은 문헌에서 묘사하는 모범적 시민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일례로, 콜롬비아인이 다양한 사회적 만남의 자리에 참여하는 태도를 살펴보면 콜롬비아 사회 내의 연결고리가 빈약함을 알 수 있다. 오랜 가톨릭 전통을 가진 국가로서 콜롬비아 국민이 비교적 자주 참여하는 자리가 종교 집회임은 놀랍지 않다. “절대 불참”을 의미하는 0에서 “매주”를 의미하는 100까지의 척도에서 종교적 집회 참여에 대한 응답자 평균 점수는 48이었다. 즉, 콜롬비아인은 평균적으로 종교적 집회에 한 달 주기로 참여한다. 사친회(Parent-Teacher Association, PTA) 참여 관련 질문에 대한 평균 점수는 23으로, 이는 콜롬비아인이 학교에서 열리는 자리에 평균적으로 1년에 한두 번 참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놀라울 일도 아니지만, 이보다 더 낮은 점수를 기록한 항목은 정당 모임에의 참여도였다. 100점 만점의 척도에서 응답자 중간값이 8로 나타났다. 즉, 정당 모임에는 거의 절대 가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림 4>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이러한 사회적 만남에의 참여도를 측정한 수치는 시간에 따른 변천이 그렇게 크지 않다. 데이터를 통해 알 수 있듯 콜롬비아인은 다양한 형태의 모임에 대한 참여도가 낮은 편이다. 그 가운데 비교적 참여도가 높은 사회적 만남의 자리는 중요 인물 또는 당국이 강제하거나, 도덕적 의무감에 참여하는 행사의 자리이다. 사제나 목사는 자신의 교구민이 예배 또는 회의에 참여할 것을 독려한다. 교사 및 교직원은 학부모가 학교측과 만나 학생의 발전상황 또는 전체 지역사회의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학부모를 사친회에 초대하거나, 혹은 참여를 강제하기도 한다. 설문 결과 콜롬비아인이 가장 자주 참여하는 것으로 드러난 모임이 이러한 유형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수 있다. 예시 중 나머지 두 가지 종류의 모임은 자발적인 성격이 더욱 짙고, 동시에 사회적 복지 수준을 개선할 수 있는 잠재력이 더욱 큰 자리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콜롬비아인들은 정확히 이런 종류의 모임 참여를 피하고 있다. 

그림4


정당 모임 참여율이 낮은 것은 콜롬비아인이 정치에 대하여 관심이 적은 것과 유관할 수 있다. 정치적 사태에 대한 관심의 정도를 묻는 질문에 대해 무려 68%가 관심이 적거나 아예 없다고 응답했고, 반대로 32%는 정치에 어느 정도 혹은 매우 높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 비율은 시간의 흐름과 관계없이 비슷한 수준을 유지해 왔다. 비슷한 맥락에서, 놀라운 일도 아니지만, 정당과의 공감대는 놀랄 정도로 낮다. 무려 국민 73%가 정당과 공감대를 형성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콜롬비아에서 정치는 일부에만 국한된 잘 알려지지 않은 취미인 것으로 보인다.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앞서 언급했듯 민주주의가 잘 기능하기 위해서는 신중히 투표하여 대표자에게 책임을 물을 줄 아는 적극적인 시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래로부터의 압박이 없으면 정치인은 아무런 견제 없이 다수의 이해를 대표하는 일과 사회정의, 집단 복지 등의 목표 달성을 위한 결정을 내리는 일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소수에게 혜택을 주고 엘리트의 이권을 보호하기 위한 통치를 할 가능성도 있다.      

결론
필자는 콜롬비아 시민이 민주주의가 최고의 정부 형태라는 점을 굳게 믿고 있지 않으며(국민 세 명당 한 명이 이 명제에 동의하지 않음), 국내 민주주의 기능에 만족하지 않고, 정치적 제도에 대한 신뢰도가 낮으며, 시민 활동 참여도가 낮고, 정치에 관심이 없으며, 정당과 동질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을 설명했다. 이것이 2019년 말 시위가 발생한 배경이다. 전국적으로 대규모의 시위가 일어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처음 시위를 시작한 것이 노동조합이었다고는 하나, 다른 여러 가지 이유로 많은 세력이 이에 합류했다. 더불어, 당초 시위는 수도인 보고타(Bogotá)에서 하루 동안 진행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전국의 다른 많은 도시에서 비슷한 시위가 반복되며 약 한 달간 지속되었다. 시위는 자발적인 것이었으며 노동조합원, 학생 연합, 환경 활동가 및 여러 가지 이유로 시위 참여를 결정한 개인 등 각계각층이 이에 참여했다. 시위의 자발성 및 규모를 보면, 시민들이 시위를 정부 및 제도에 대한 불만과 불신 등 데이터에서도 드러난 감정을 표출할 통로로 판단했음을 알 수 있다. 비록 점차적으로 시들해 지면서 연말의 축제 분위기와 함께 종료되었다고는 하나, 시위는 콜롬비아 민주주의가 가지고 있는 커다란 단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따라서 시민의 깊은 좌절감이 아직 남아있는지, 또 이것이 근시일 내에 정치적 불안정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지 여부를 평가하기 위해 시민의 불만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극히 중요하다. 나아가 보다 평화롭고, 정의로우며, 공평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떠한 조치 및 개혁이 필요한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림5



그림6



* 각주
1) 상세정보는 www.lapopsurveys.org 사이트 참고
2) Putnam, Robert D., Robert Leonardi, and Raffaella Y. Nanetti. Making democracy work: Civic traditions in modern Italy.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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