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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특집이슈

[월간정세변화] 2020년 8월 중남미 한눈에 보기

중남미 일반 EMERiCs - - 2020/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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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국영 구리 기업 코델코, 국영화 논란 재점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를 보면 한 나라의 주요 자원을 특정 계층이 독점해 이윤을 추구할 때 얼마나 비극적인 결과가 빚어질 수 있는지가 잘 나타나 있다. 영화의 배경은 세계 최고 품질의 다이아몬드 생산지로 유명한 시에라리온으로, 시에라리온에서는 1991년부터 무려 11년 동안 다이아몬드 광산을 차지하려는 정부군과 반군 사이에 처절한 살육전이 펼쳐진 것으로 유명하다. 영화의 주인공은 무기 구입을 위해 밀수 거래를 일삼던 용병 대니 아처(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와 다이아몬드 광산에서 강제 노역을 하던 솔로몬(디몬 하운수 분)으로 솔로몬은 소년병으로 끌려간 아들을 구하기 위해 광산에서 발견한 크고 희귀한 다이아몬드를 숨기기로 결정한다. 아처는 이 사실을 알고 다이아몬드를 손에 넣기 위해 솔로몬에게 접근하지만 둘은 이내 죽음의 땅 아프리카를 벗어나기위해 다이아몬드를 활용하기로 의기투합한다. 이 과정에서 다이아몬드를 둘러싼 온갖 부정부패와 불과 10세 남짓한 어린 아이들이 소년병으로 끌려가 전쟁에 참여하는 아프리카의 비참한 실상이 낱낱이 민낯을 드러낸다. 


굳이 블러드 다이아몬드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국가의 주요 자원이 이윤 추구를 최우선 가치로 하는 특정 집단에 돌아갔을 때 얼마나 비참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우리는 세계 역사를 통해 무수히 보아왔다. 때문에 민영화를 둘러싼 결정은 아무리 신중해도 지나치지 않다. 최근 칠레의 국영 구리 기업 코델코(Codelco)를 둘러싼 논란도 이와 같은 관점에서 조명해 볼 수 있다. 


칠레에서는 지난 1971년 살바도르 아옌데(Salvador Allende) 대통령이 코델코를 국유화한 이래 수십년 동안 코델코의 민영화를 둘러싸고 무수한 논의가 진행되어 왔다. 가장 최근 코델코의 민영화가 화두에 오른 것은 칠레의 극우 정당인 독립민주연합(UDI, Independent Democratic Union)이 2020년 7월 코델코의 민영화를 제안하면서 부터다. UDI는 최근 코델코의 시장 가치가 505억 달러(한화 약 59조 9,081억 원)에 달한다며 코델코를 매각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응할 재원을 마련하고 코로나19로 바닥이 난 국가 재정을 보충하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UDI의 이와 같은 제안은 즉각 정치권과 노조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가장 먼저 UDI의 제안을 반대하고 나선 곳은 칠레의 구리광산노조(FTC, Federation of Copper Workers)였다. FTC 측은 UDI의 코델코 민영화 제안에 대해 “나라를 더 가난하게 만들고 부자들은 더 부자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는 소수 정치 집단의 주장일 뿐”이라며 “코로나19의 전 세계적인 확산에도 불구하고 칠레의 구리 업계가 산업 활동을 이어가고 있고 코델코가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고 있는 중요성이 높은 만큼 코델코에 대한 민영화 제안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표시했다. 칠레 광산 협회의 마누엘 비에라(Manuel Viera) 대표 역시 “코델코는 칠레 정부의 가장 중요한 재원이자 칠레의 자부심이라고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업”이라며 코델코에 대한 민영화 주장에 반대하고 나섰다. 결국 칠레 정부가 UDI의 민영화 제안에 반대한다는 의사를 표시하면서 해당 논란은 마무리되었다. 


우파인 피녜라 대통령의 연정 파트너인 UDI가 민영화를 제안했음에도 불구하고 피녜라 대통령이 코델코 민영화 시도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은 자국 내 반대 여론을 의식한 조치로 풀이해볼 수 있을 듯 하다. 


뿌리 깊은 코델코 민영화 논란

사실 코델코에 대한 민영화 논란은 그 역사가 깊다. 최근 불거진 UDI의 민영화 제안은 차치하고서라도 당장 현 칠레 대통령인 세바스티안 피녜라(Sebastián Piñera)  대통령이 첫 임기(2010~2014년) 당시 코델코의 민영화를 주장한 바 있다. 당시 피녜라 대통령은 기업의 효율성과 경쟁력을 높일 것이라며 민영화를 추진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칠레 정부가 소유하고 있는 코델코 지분 20%를 민영화하겠다는 정책을 예고하기도 하며 반대파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당시에도 코델코 근로자들이 24시간 총파업을 감행하며 강경하게 코델코 민영화를 반대한 끝에 결국 민영화 시도는 무산되었지만, 2018년 피녜라 대통령이 4년 만에 재선에 성공하면서 ‘코델코 민영화’라는 해묵은 불씨에 또 다시 불이 붙은 것이다. 이번에도 정치권과 노조의 반발로 코델코 민영화가 무산되기는 했지만 우파인 피녜라 대통령이 정권을 잡고 있는 데다 그가 집권 1기 당시 코델코의 민영화를 추진했던 인물이라는 점에 비추어 보면 코델코의 민영화를 둘러싼 논란이 언제든 다시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 관건은 코델코 민영화에 대한 반대 여론이 얼마나 높으냐 인데 아직까지는 칠레 내에서 코델코 민영화에 대한 반대 여론이 찬성 여론 보다 더 높은 것으로 보인다. 


코델코 민영화 반대파 측 이유와 민영화의 장단점

그렇다면 코델코의 민영화에 반대하는 여론이 높은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우선은 칠레 내에서 코델코가 상징하고 있는 특수한 지위가 코델코 민영화에 대한 반감의 근본을 이루고 있는 정서라고 해석해 볼 수 있을 듯 하다. 코델코는 세계 최대의 구리 생산 기업 중 하나로 2020년 1월 호주 국적의 광산 기업인 BHP에 1위 자리를 내 주기 전까지는 줄곧 1위 자리를 지켜온 ‘칠레인들의 자부심’과 같은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전 세계 구리 생산량의 11%를 담당하고 있을 만큼 단일 기업으로는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도 상당하다. 또한 구리는 칠레 국내총생산(GDP)의 약 10%를 차지하고 있는 칠레의 기간 산업이다. 칠레의 경제 자체가 구리 산업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만큼 코델코의 민영화에 대해 신중하게 접근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민영화는 또한 부의 불평등을 야기하고 직업의 불안정성, 고용 착취와 같은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는 점이 많은 사람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지점이다. 물론 코델코의 민영화를 주장하는 쪽의 논리에도 근거는 있다. 


UDI 측은 코델코를 민영화해 재원을 충당할 수 있다는 점 외에도 코델코에 대한 세금 및 로열티 징수 등의 방법을 통해 지속적으로 국가 소득을 올릴 수 있다는 점을 민영화의 장점으로 꼽는다. 기업을 민영화할 경우 국영 기업에는 기대할 수 없는 효율화와 경쟁력 강화를 꾀할 수도 있다는 점도 민영화 찬성론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논리다. 이렇듯 양 측의 주장에 모두 근거가 있는 만큼 민영화를 두고 옳고 그르다를 이분법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무의미한 흑백논리의 연장이 될 공산이 크다. 다만 고려해야할 부분은 있다. 


민영화 논란, 국가별 특수성 고려해야

대부분의 국가들의 경우 생존에 필수적인 공공재라고 할 수 있는 수도나 전력은 공기업이 담당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민간이 운영하는 경우도 있으나 대개는 공기업에서 담당하는 경우보다 비쌀 뿐더러 서비스 수준도 떨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통신, 가스, 교통처럼 준 공공재라고 할 수 있는 산업은 국민여론이나 정치적 동향에 의해서 결정된다. 중요한 것은 민간부분과 공공 부문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칠레에서 구리는 공공재라기 보다는 국가 수입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정책재’로 접근하는 것이 옳다. 정책재란 사우디아라비아에 있어서 석유가 차지하는 지위처럼 특정한 한 자원이 한 국가 재정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경우를 말한다. 사우디 만큼은 아니지만 칠레 역시 구리라는 한 자원에 대한 의존도가 상당히 높은 국가이다. 따라서 민영화냐 국유화냐라는 문제를 차치하고라도, 구리라는 국가의 주요 자원이 옳지 않은 세력에 넘어갈 경우 국가의 운영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보아야 한다. 이 지점에서 노르웨이의 예를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될 듯 하다. 노르웨이의 경우 석유자원에서 얻어진 수익의 상당 부분을 국부펀드에 투자하여 국민들의 미래를 대비하고 있다. 그렇다면 노르웨이처럼 주요 자원을 국유화하는 것이 정답일까? 이에 대한 답은 ‘꼭 그렇지 만은 않다’이다. 과거 일부 독재 국가의 지도자들이 국영기업을 이용해 뒷주머니를 채우는 등 국영 기업이 부정축재의 수단으로 전락한 예에서도 볼 수 있듯 국유화에도 그늘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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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로 돌아와보자.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에서 묘사하듯 몇몇 정부 관료가 국가의 주요 자원을 독점할 경우 해당 국가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어떤 나라에서는 그 혼란의 수준이 부정 부패나 빈부 격차 심화 등에 그칠 수 있지만 어떤 나라에서는 블러드 다이아몬드에서처럼 목숨을 둘러싼 사투나 내전에까지 이를 수 있다. 결국 민영화냐 국유화냐의 결정은 해당 국가의 산업 구조나 국민의 의식 수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장기간의 논의와 여론 수렴 과정을 거쳐 이루어 져야하는 문제인 것이다. 다만 다시 한 번 강조 해야할 것은 국가의 수준에 따라 민영화로 인한 결과가 단순하게 이윤 착취로만 남는 것이 아닌 엄청난 비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 있어서 민영화의 그늘이 매우 깊을 수 있다는 점을 필히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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